lovesera: ART of VIRTUE
[기고] 철들고 그림 그리기 시작한 직장인 이야기 본문
* LG전자 블로그에 기고한 포스팅입니다. http://social.lge.co.kr/view/opinions/drawing_start/
이 글은 철든 후에 예술이 하고 싶어진 40대 초반 직장인의 이야기입니다.
1년 동안 거의 매일 매일, 삶 속에서 그림을 그리며 달라진 자신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이 글의 목적은 이 글을 읽는 사람도 일상 속에서 예술을 시작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것입니다.
철들고 시작하는 예술
만일 제가 고등학교때 미술 학원을 다니며 입시 미술을 했다면, 그래서 미술 대학에 진학해서 평생을 미술과 관련된 일을 하며 이것을 직업으로 삼고 살아간다면 지금처럼 행복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모든 창작에는 고통이 따르기 때문이죠.
예술을 직업으로 삼기가 쉽지 않겠지만 행복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철들고 시작하는 예술에는 고통이 없습니다.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적당한 재료를 준비하고 꾸준히 즐기다보면 조금씩 조금씩 손이 나의 의지대로 움직인다는 느낌이 생기며 내가 만나는 삶을 나의 손으로 재창조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맛 보게 됩니다.
그리기를 시작하고 달라진 것들
2011년 4월 초. 지금으로부터 1년전, 어느날 갑자기 그림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왜 그런 마음이 생겼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제가 확실히 아는 것은 그림이 그리고 싶다는 것 뿐이었습니다. 1년 동안 열심히 그렸습니다. 거의 매일 그렸습니다. 그림을 그리며 저는 몇 가지 새로운 습관이 생겼습니다.
1) 하루 하루가 새로워졌습니다.
매일 매일 일상을 다른 눈으로 봅니다. 오늘은 무엇을 그려볼까? 늘상 지나치던 익숙한 장소, 사물, 햇빛, 그림자 등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2) 관찰력이 생겼습니다.
멋진 풍경과 소중한 사물을 사진으로 찍는 것보다 그림으로 그리면 마음속에 더 깊이 새길 수 있습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눈으로 찍은 사진을 손이라는 프린터로 출력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사물을 치밀하게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물체의 외곽선, 모양, 소실점, 빛의 방향과 그림자를 유심히 봅니다.
3) 집중력이 생겼습니다.
그림은 손으로 그리기에 앞서 먼저 눈으로 그립니다. 사물의 형태, 외곽선, 그림자, 색상 등을 파악해야만 내 손을 움직여 원하는 모습대로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시간을 두고 꼼꼼하게 사물을 살피는 습관으로 집중력이 좋아졌습니다.
4) 평생의 취미가 생겼습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취미입니다. 생산적입니다. 창조적입니다. 예술적입니다. 한적한 골목에서 스케치를 하고 있으면 지나가던 어른, 아이들이 말을 걸어 옵니다.
무엇을 그리세요? 왜 그리세요? 와~ 멋져요.
마음에 드는 그림은 소박한 액자에 넣어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을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5) 시간이 소중해졌습니다.
약속시간에 너무 일찍 도착해 시간이 남아도 지루하거나 짜증나지 않습니다. 잠시 짬을 내서 그림을 그릴 수 있어 고맙습니다. 매일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하루에 1시간 이상 시간을 낸다는 뜻입니다. 하루는 누구에게나 24시간이지만 그림 그리는 사람에게는 25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시작하기
철들고 그림을 시작하는 어른에게 입시 미술은 적절한 방법이 아닙니다. 미술학원에 가면 아마 고등학생들과 함께 이젤 위에 놓인(엄청 크게 느껴지는) 4절지에 선 그리기부터 시작할지도 몰라요. 엄청난 실력의 학생들을 보며 상처 입을지도 몰라요. 어른은 어른을 위한 방법이 필요합니다.
1) 작게 그리세요.
처음 그림을 시작하고 거의 1년 동안은 A5(A4의 절반 크기) 노트에 그렸습니다. 작게 시작할수록 좋아요. 나중에 손이 빨라지고 사물을 보는 방법을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좀 더 큰 종이에 그리고 싶어진답니다.
2) 색상은 나중에 우선 선이 먼저입니다.
우선 사물을 보는 안목과 손의 근육이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빨리 예쁜 색연필과 물감으로 채색을 해 보고 싶겠지만 처음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당분간 선으로만 그리는 것이 좋습니다.
3) 사람은 나중에
그림을 시작하면 우선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리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1년만 참으세요. 많은 피사체 중에 가장 그리기 어려운 것이 바로 사람이거든요. 인간의 우뇌는 그림을 판단하는 능력이 엄청나게 뛰어나서 사람의 얼굴을 그리면 곧바로 ‘닮았나?’ 먼저 판단합니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재능을 한탄하며 곧 그림 그리기를 중단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4) 디지털보다 아날로그가 먼저입니다.
그림을 처음 그리기 시작할 때 멋지게 슥삭슥삭 그림을 그리는 자신을 상상하며 디자이너들이 사용하는 그래픽 타블랫을 덜컥 구입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손은 제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도구의 문제가 아니라 제 눈과 손의 문제였습니다. 종이와 연필, 펜을 가지고 충분한 연습을 통해 손의 근육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는 수준까지 연습이 필요합니다. 내가 내 손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어야 마음에 드는 그림을 만들수 있습니다.
발전 단계
그림은 손과 눈으로 그리는 것입니다. 관찰력이 충분히 길러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그리고 싶은 부분만을 그린다는 의미입니다. 사물을 관찰한다는 것은 엄청나게 많은 시각정보 중에서 그리고 싶은 부분만을 분리해 낸다는 이야기 입니다. 연습이 필요한 기술이죠.
초등학교 시절 이후로 그림을 그리지 않던 사람이 다시 그림을 그리면 다음과 같은 순서로 기술이 발전합니다.
1) 사물을 관찰하며 손을 푸는 단계
2) 보이는 것을 그리는 단계
3)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는 단계
수 십 년을 사용하지 않던 그림 그리는 근육을 내 마음대로 움직이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100시간 이상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조급히 생각하면 안 됩니다. 천천히 조금씩 변화가 일어납니다. 문제는 재능이 아니라 시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재능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작품과 비교합니다. 그림은 다름 사람과의 경쟁이 아니라 자신과의 경쟁입니다.
매일 매일 꾸준히, 좋아하는 것을, 작게 그리면 됩니다.
다른 사람들의 그림을 구경합니다.
그림을 그리고 싶을 때 좋은 방법은 보통 사람이 그린 그림을 보는 것입니다.
- daily drawing – 매일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
- 어반 스케쳐 서울 – 2주 마다 함께 오며 스케치하는 모임
- 제가 2011년에 그린 그림 모음
- Flickr 수채 색연필 그룹
- 몰스킨에 그림 그리는 사람들
이번 포스팅에서는 1년간 그림을 그리며 변화된 제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그림을 시작하는 방법과 도구에 대해 자세히 설명 드리겠습니다.
많은 기대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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