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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과통찰력

문제는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일상예술가 2009. 9. 3. 15:55
며칠 전에 서울경제신문의 기자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알파대디(?)라는 주제라고 했다.
일도 열심히 하고 가정에도 충실한 아빠들을 소개하는 특집세션이라고 한다.

이 기사가 어제 서울 경제 신문과 인터넷에 실렸다
[리빙 앤 조이] 당신은 '알파 대디' 입니까?

오바마는 강아지를, 나는 계곡에 놀러가며 구루마를 끄는 멋진(!) 모습이다. ㅠㅠ;
 
오바마랑 같은 레벨이라며 아내는 좋아했다.


그런데...
관심이 가는 것은 기사에 딸린 코멘트다.
대부분의 의견들이 부정적이었다. 충분히 이해 할 수 있다.

나도 돈 있으면 알파 대디가 될 수 있다고 하는 의견이 있지만
사실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조금 하고 싶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1979년 부터 15년 동안
부모님은 일년에 두 번(설날, 추석)만 쉬면서 장사를 하셨다.
1993년 황당한 교통사고로 고인이 되실 때 까지...
사고 이후, 업친데 덮친 격으로 소송이라는 무서운 제도로
남은 가족의 경제적 기반이 사라져 버렸다.

부모님과 함께 한 추억은 많지 않았지만
기억속의 부모님은 항상 우리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시는 분이었고
고인을 원망하지 않았다.

1995년 군 제대 후... 나는 2개의 아르바이트를,
남동생은 철거 막노동을 하면서 등록금을 벌었다.

경제적, 체력적 한계로 인해 이 세상에서 더이상 살고 싶지 않을때
지금의 장모님이 말씀하셨다 '힘들게 고생하지 말고 빨리 결혼 하라'고...
조건은 단 하나! 가톨릭에서 영세를 받는 것.

얼마든지 좋은 조건의 집안과 결혼할 수 있었던 아내였지만
나의 진심을 알아 주고 나를 선택해 주었다.

10개월의 교리를 통해 나는 세라피노(Seraphino)가 되었다
아내의 세례명은 중학교 때부터 세라피나(Seraphina)였다.
그래서 우리 가족 홈페이지가 lovesera.com 이다

1996년 여름, 25살, 대학교 3학년 여름 방학에 혜화동 성당에서 결혼을 했다.
축의금을 모아 대학 등록금을 냈다. 그 다음 학기 등록금은 아내가 벌어 왔다.
버스를 2번이나 갈아타고 힘들게 직장을 다니며 힘들게 번 돈.
눈물이 마구 마구 나왔다.

졸업을 압둔 1997년 11월, 한국이 IMF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었다.  
수십 곳에 지원 했지만 모두 낙방.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었다. 간절히 원하니까 되더라. 신기했다.
수백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첫번째 직장에 들어 갔다.
아마 젋은 나이에 고생 조금 해 보고, 결혼한 내가 측은해서 뽑아줬나 보다.

취업에 성공하자 마자 1998년 10월 기다리던 첫아이 가은이가 태어났다.
그 후 4년 뒤, 2002년 월드컵이 한창 일 때 둘째 준영이를 낳았다.
튼튼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축복이다.




준영이를 낳고, 옛 직장의 이사님이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베풀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베풀어라"
그 뒤로 항상 가슴에 간직하고 있는 말이다.



이제 결론을 이야기 할 차례이다.
"가족, 직장 동료, 친구, 온라인 지인 들에게 베풀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베풀어라!"
이것이 나의 철학이다.


베푸는 것이 반드시 돈일 필요는 없다.
시간, 관심, 사랑, 배려 등 우리가 가진 것은 많다.  
알파 대디는 결국 베풀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가족에게 베푸는 사람이다.

요즘? 행복하다.

야생차체험관 9

그런데 혼자만 너무 좋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 나쁜일이 생길 것 같아 불안하다.
그래서 기회가 생길 때 마다 자꾸 자꾸 좋은 것을 나눠주는 것이다. 겁나기 때문이다.

다시 정의하면 ...
알파 대디는 사랑, 시간, 관심, 배려를
가족, 직장 동료, 친구, 온라인 지인 들에게 베풀어 주는 사람이다.
 
이것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이며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의 문제이다.

더 많이 나눠 줄 수록 더 좋은 일이 생긴다는 것을
이 세상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참고로, 힘들게 막노동을 하던 사랑하는 나의 동생은
이제 10년차 공군 조종사가 되어 군 복무 중에 있다. 자랑스럽다.


 지금에 와서야 고백하지만 사실 우리 형제는 아내가 키워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