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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독서일기]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일상예술가 2018. 1. 17. 14:26




#독서일기 #지방시 #맥도날드알바교수님


작년 11월 체인지온 10주년 컨퍼런스에서 

만난 #김민섭 작가님.



작가님의 책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이제야 읽었습니다.

읽기 쉬운 문장과 흥미있는 내용으로

지방 출장가는 KTX에서 왕복하면서 다 읽었답니다.


천천히 부드럽게 이야기 하시던 작가님의 어투가

책에서도 똑같이 느껴졌습니다.


작가님은 자신이 속한 현실을 원망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하루 하루 바른 선택을 하고 후회없는 삶을 살아가는 분이군요.


강의를 하는 장면에서 학생들에 대한 사랑도 느껴지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 대한 연민도 느껴집니다.


'교수'는 되지 못해도, 인생의 '고수'가 이미 되신 것 같아요.


자세한 내용은 직접 읽어 보시면 되고

제가 공감했던 부분의 독서노트를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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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교 장학금만으로는 등록금과 생활비를 충당할 수 없어서 기회가 닿는 대로 생계를 위한 아르바이트를 했다.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가장 오래 했고, 주말이면 택배 상하차도 종종 나갔다.



어떤 거대한 ‘괴물’이 조금씩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어떤 개별 주체가 아닌 대학이 구축한 ‘시스템’ 그 자체였다. 학부생이든, 대학원생이든, 시간강사든, 교수든, 교직원이든, 대학의 그 누구든, 그 안에서는 온전히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음을 비로소 인식했다.



좋은 수업을 하는 교수는 수강생의 발표 수준에 맞춰 그에 따른 피드백을 해준다.



쏟아지는 말의 주먹에 나는 그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그런 희망 고문에 상처받거나, 괜히 연루되어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게 돌아온 것은 그래도 자네 살 만했지,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것이 나를 지탱해온 어느 한 부분을 사정없이 무너뜨렸다. 그다지, 살 만하지 않은, 삶이었습니다…… 정말로요.



제 욕심이지만 어느 날 제 손을 잡고 따뜻한 목소리로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선생님도 알아, 그래도 잘했어, 고맙다, 이렇게 한마디 해주시면…… 좋겠어요.



글을 쓰는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몹시 부끄럽다. 잘못된 것을 알고도 그 어떤 저항도 하지 못했고, 나를 믿고 함께 일하겠다고 온 학부생 조교에게 관행을 강요했다.



사무실, 연구소, 기숙사, 대학의 어디를 가든 학부생 근로 장학생들이 있다. 결국 값싼 학부생의 노동력으로, 대학 사무의 최전선이 지탱되고 있는 셈이다.



대학은 기업보다 한발 앞서, 비정규직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구축해냈다. 더 이상 정규직 교직원을 선발하지 않는다.



대학은 나름대로의 신자유주의적 생태계를 구축해가고 있는 것이다. 학부생과 대학원생, 심지어는 졸업생의 값싼 노동력으로 행정의 최전선을 채운다. 4대 보험이나 퇴직금 명목조차 없는 4개월짜리 계약서를 받아 든 시간강사들이, 2년짜리 비정년 트랙 교수들이 강의의 대부분을 책임진다.



나는 피해자인 동시에 방관하는 가해자였고, 학부생 조교들은 온전히 피해자의 몫을 떠안았다. 수료 후 시간강사가 된 지금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용기를 내지 못한다. 나는…… 비겁한 인간이다.



그런데, ‘노동’에는 사람을 ‘성찰’하게 해주는 힘이 있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타인에 대한 어떠한 ‘감정’이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또 다른 나를 공감하고 이해하려는, 저에게 내재된 어떤 원초적 욕구’였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강의실에서, 학생 하나하나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모두 존중할 만한 각자의 ‘삶’을 영위하고 있을 것이라는 어떠한 자각, 이것은 몸을 수고롭게 해 ‘노동’하지 않았다면, 아마 느껴보지 못했을 경험이자 감정입니다.



워시장에서 설거지를 하며 정말 많은 논문의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이후 어떠한 삶을 살든, 몸이 허락하는 적당한 ‘육체 노동’을 반드시 하며 살고자 마음먹었습니다



가벼움에서 무거움을 찾아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 생각했다.



모두의 이름을 기억하기



학생들은 내가 할 수 없는 독특한 방식으로 문제를 대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냈다. 지금에 와 굳이 규정해보자면 그것은 평범한 집단 지성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과 다양성이었다



“정말 미안합니다. 제 실수를 여러분이 바로잡아주었습니다. 인문학 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저보다 더욱 좋은 선생님입니다. 다음 주에 제가 조를 지정해 공지해주겠고, 다음 학기 여러분의 후배들에게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어느 날 문득 ‘교학상장’이라는 단어를 기억해냈다. “가르침과 배움은 함께 성장한다”라는 의미의 사자성어다.



학생은 내게 가장 좋은 선생님이다. 오직 가르치기 위해서, 라고 생각했지만, 언젠가부터 아는 것을 가르치고 모르는 것을 배우기 위해, 나는 더욱 즐겁게, 그리고 두렵게 강단에 서고 있다.



‘당신은 나를 볼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라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었다.



학생들이 강의를 책임지고 교수는 방관자가 되어버리는 주객전도, 스무 살의 어린 학생이 보기에도 그것은 명백한 ‘직무 유기’였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겠습니다’ 하는 두 마디면 충분한 것이다.



특히 “미안하게 생각합니다”라는 구절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참 비겁한 표현이다. “미안하다”라고 하면 될 것을, “-하게 생각한다”라고 해서 사과하는 주체를 모호하게 만들어버린다.



카운터 위의 햄버거를 높이는 문법의 오류는 역설적으로 최상급의 존대어를 만들어냈다. 강의실의 문법과 거리의 문법에는 이처럼 차이가 있었다.


나는 나약한 인간이어서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어렵게 배운 삶의 태도를 곧 잃어버릴 것만 같기 때문이다.



대신 내가 뒤늦게나마 배운 연구실과 거리의 인문학을 함께 전하고 싶다.



갑의 자리에 섰을 때 단순히 을을 불쌍히 여기는 것을 넘어 그를 자신에게 초대할 수 있는, 그렇게 손을 내밀어 다정다감함을 나누어줄 수 있는 인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