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선 대표님과의 인터뷰 기사. 정말 멋지게 정리해 주셨어요
원문출처 : http://www.sunblogged.com/545



[생각읽기]그림 그리는 남자 - 정진호


어느 날 여러분이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게 됐다면 이력서를 다시 쓸 것인가아니면 홀로서기를 할 것인가물론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대개 1순위로 이력서를 다시 써서 직장을 구하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왜 그럴까직장 안에 있는 것이 안정적이기 때문이다덧붙여 홀로서기는 너무 막막하다직장에 다닐 때 했던 일배운 능력을 기반으로 홀로서기를 했을 때 먹고 사는 데 문제 없다고 느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일"을 할 수 있는 조직이라면 좋겠지만, 일을 버리고 회사 다니는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아...


‘그림 그리는 남자로 알려진 정진호 작가 (호칭을 어떻게 해야할지 묻자 그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니 작가로 불리는 게 편하겠다고 답했다)를 만났을 때그는 인생의 기로에서 어떤 길을 갈 것인 지 마지막 고민을 하고 있었다그는 98년 모 그룹사 SI업체에 입사해 개발자로 사회 생활을 시작해 2013년까지 야후코리아, SK컴즈 등 꽤 알려진 ‘조직에서 일했다지난해 말 과감하게 회사를 나왔고어쩌면 그 때 이미 홀로서기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도 모르지만그래도 몇 달째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고민 중이라며 말을 꺼냈지만이미 답을 구했다는 느낌이 전해졌다
회사를 그만 두고 어떻게 시간을 보내냐는 질문에 이미 그의 일정은 빼곡히 차있었다.


3월부터 본격적으로 진행하는 강의가 있습니다그림 그리는 기쁨을 일반인들과 나눌 수 있는 ‘행복화실’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됐구요.. 매월 비주얼 씽킹’ 워크숍도 시작합니다.”


그가 상당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행복화실 2014’ 프로그램에는 ‘일상을 예술로 만드는 12주의 그림여행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그림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석 달동안 함께 그림을 그리며 그림 실력도 키우고 그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도록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석 달 후에는 각자의 그림 전시회로 화려하게 마무리를 하는 것이다평일 저녁에 석 달 동안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조직에 몸담기를 이미 거부한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직장인이 아닌 작가’ 다운 답이 돌아왔다.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과 나누는 것그림으로 생각을 정리하도록 돕는 것은 모두 제가 앞으로 평생 해야 할 ‘이라고 생각합니다홀로서기 대신 조직을 선택하더라도 일을 버릴 수는 없는 것이죠.” 일을 할 수 있는 조직을 찾는 것은 의미 있지만 (자신이 평생 해야 할일과는 상관없이 회사 다니는 것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평생 해야 하는 (하고 싶은) ‘을 이미 찾았다는 그가 부러웠다대다수의 우리는 ‘’ 보다는 안정적인 밥벌이가 보장되는 조직을 찾고 있는데 말이다그는 어떻게 그 일을 찾게 된 것일까그 과정은 어느날 갑자기 영감처럼 떠올랐다기 보다는 오랜 세월에 거치면서 생각과 경험이 합쳐져 숙성된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다가 알게된 재능 


98년부터 개발자로 일했던 그는 야후 코리아로 자리를 옮기면서 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때 마침 과연 한국에서 언제까지 개발자로 일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던 시기였다개발 경력으로 해를 거듭하면서, 15, 20개발자로 경험이 쌓일수록 그만한 부가가치를 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답을 얻기 어려웠다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사례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던 때 야후에서 개발자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맡게 되었다. ‘Technical Evangelist (기술 전도사)’가 그가 하는 일의 정의였다당시 야후는 시스템(내부 IT 인프라)이 너무 달라서 야후에 입사하면 야후의 독자적인 기술을 배워야 일할 수 있었다개발자를 대상으로 한 교육과정을 설계해야 하기 때문에 인사교육 담당자가 하기 어려워 그가 맡게 된 것이다교육 과정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일이 보통의 개발자들은 그닥 좋아하지 않는 일이었지만 그는 그 일이 너무 재미있었다고 했다.


사내 교육이다 보니 강의를 맡은 개발자들에게 강의료를 많이 줄 수가 없었어요. 1인당 2만원 정도 돌아가는데 매력적인 금액은 아니잖아요그래서 어떻게 하면 강사들의 만족도를 높일까 고민하다가 디자이너를 꾀여서 멋진 디자인을 곁들인 후드 티를 만들었죠거기에 ‘Yahoo Bootcamp Trainer’라는 글자가 새겨진 한정판 후드티를 만들어 나눠 주었습니다.”


한정판 후드티의 힘은 컸다교육에 참여한 강사들이 굉장히 좋아하며 만족도가 높아졌다. 2만원을 한정판으로 가치 상승시킨 것이었다이 경험을 통해 그는 교육을 통해 가치를 나누고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행복해할지를 고민하는 일에 본인이 꽤 소질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그 이후에는 자신이 알고 있는 좋은 것들을 잘 정리해서 사람들과 나누는 일에 더욱 관심을 쏟게 됐다.


에반젤리스트 활동을 하다 보니 머리가 복잡해서 마인드 맵이라는 프로그램을 쓰게 됐다정리 기능이 너무 좋아서 교육도 받아가며 열심히 마인드 맵을 활용하게 되었고어느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슬라이드를 만들어 팀원들에게 강의를 했다그 후에 많은 개발자들이 오히려 자신보다 더 마인드 맵을 잘 활용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팀원을 대상으로 한 강의는 개발자들 사이에 번져 수강생이 수십명을 넘어서고 블로그를 통해 외부 강의도 했더니 더 많은 사람들이 듣게 됐다이 때의 경험이 계속 발전되어서 지금은 생각을 간결한 그림으로 정리하는 기술에 관한 비주얼 씽킹’ 워크숍을 만들게 됐다.


이렇게 에반젤리스트로 새로운 개념을 대중들이 알기 쉬운 용어로 풀어서 해석하고그것을 강의를 통해 나누는 일을 하다가 결국은 직업이 바뀌었다. 2010년부터는 SK컴즈로 회사를 옮겼고 개발자가 속한 부서가 아닌 기업문화팀에서 일하게 됐던 것이다.


정진호 작가가 자신이 평생 할 일을 찾는 과정에서 또 한번 중요한 계기를 맞게 된 것은 마흔을 넘기면서 이다. ‘불혹이라는 수식어가 문득 무겁게 느껴지면서 일을 하더라도 하루 하루 일을 하며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월이 흘러도 계속 남아있는 것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그러면서 문득 그림을 그리자!’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그냥 무작정 그림을 그려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지속적으로 남기고 싶었다.


1,000 시간을 투자해 '그림'을 얻다 


그래서 그는 홍대 앞을 찾았다막연히 그림’ 하면 홍대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홍대 앞에는 미술학원들이 많았는데 그의 마음을 끄는 곳은 없었다다만그곳에서 그는 미술학원들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이상한 게 미술학원에서 가르치는 그림은 생활 속에서 보기 힘든 독특한 소재를 선호하더라구요말하자면 찌그러진 캔 같은 것이었죠그리고 무조건 그림을 크게 그렸습니다일반 사람들에게 익숙한 A4 크기로 그림을 가르치는 곳은 없었어요그리고 무엇보다 미술학원에 학생들이 그린 그림은 너무나 똑같았습니다그림의 선들이 경쾌한 것은 찾아 보기 힘들고 고통스럽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그는 홍대 앞에서 그림 배우는 것을 포기하고 교보문고로 향했다서점에도 그림을 담은 책은 많은데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은 별로 없었다. ‘스케치 쉽게 하기라는 책을 겨우 구해서 2011년부터 매일 밤 그림을 그렸다처음에는 펜 하나만으로작은 크기로 그림을 그리다가 조금씩 크기도 키우고 색도 넣기 시작했다그렇게 꼬박 1년 반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하루에 두 시간쯤 잡으면 1,000시간이 넘었다그랬더니 손목이 마음대로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그림을 그리는 노력과 함께 그 과정을 기록하는 것도 꾸준히 했다. 1년반의 경험을 정리해서 철들고 그림그리다라는 책으로 엮어 냈다.



<정진호씨 그림중>


그렇게 노력해서 얻는 이었다.  작가라는 호칭을 좋아하고회사 다니는 안정감 보다는 일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렬한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이제 그가 그리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3년째 눈에 보이는 것은 다 그렸는데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려 보고 싶습니다예를 들어 동화책에 담긴 스토리를 그림으로 그린다든지 하는 것이죠…”


그가 꾸준히 하고 있는 비주얼 씽킹도 생각을 그림으로 정리하고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표현하는 것이어서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는 영역에 속한다.


저는 오래도록 일하는 게 꿈입니다 70까지… 혹은 건강이 허락한 다면 그 이상도…”


오래도록 자신이 찾은 일을 즐겁게 하면서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일그가 생각하는 행복의 정의이다참 간소한 것 같으면서도 쉽지 않은 행복을 조용히꾸준히 찾고 있는 그는 이야기 하는 내내 미소 짓고 있었다.

Posted by 정진호 일상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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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ELA 2014.03.19 16:44 Address Modify/Delete Reply

    멋진 인터뷰네요. 작가님의 근황을 알 수 있어서 좋습니다. ^^ 부디 화이팅하세요!

  2. BlogIcon 열매맺는나무 2014.03.20 10:02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인터뷰 기사 잘 봤습니다. 용기있는 선택 하셨네요.
    아무쪼록 모임 잘 이끌어 나가시고 좋은 작품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미술하는 남편과 미술지도 하고 있는데, 어른들은 선생님이 말씀하신 바 있는 기존의 '그림그리기방식-입시미술-외워 그리는 그림'을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그래야 그림 좀 배우는 기분이 드나 봅니다. 시작하실 때 저희 만나셨으면 좋았을 뻔 했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