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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인 삶을 살다 간 세벌식 자판 전도사 공병우 박사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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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인 삶을 살다 간 세벌식 자판 전도사 공병우 박사님

일상예술가 2007. 4. 1. 12:51


KLDP 에서 컴퓨터를 이용한 나이 측정을 읽다
문득 합리적인 삶을 추구하신 공병우 박사님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http://kldp.org/node/45423



공병우 박사 (1906 - 1995 )

-1906. 12. 30 평북 벽동 팔삭동이로 출생
-독학으로 1926년 조선의사 검정시험에 합격(한국 최초의 안과 전문의가ㅊ 됨)
-936년 일본 나고야대학에서 안과 박사학위를 받음
-1938년 '공안과'를 개설
-자신의 환자였던 한글학자 이극로를 통해 한글의 중요성을 깨달음
-8·15해방 후 일본어로 된 〈신소안과학 新小眼科學〉를 번역하면서 한글 타자기의 필요성을 절감 함
-1949년 그는 한국 최초로 고성능 공병우식 한글 타자기를 발명
-6·25전쟁 당시 서울에서 인민군에게 체포
-한글 타자기를 인민위원회 위원장에게 보여 주어 사형을 면함
-납북되었으나 탈출에 성공, 본격적으로 한글 기계화 연구에 몰두
-1951~71년 한글학회 이사를 역임
-1971년에는 맹인재활 센터를 설립
-1988년에는 한글문화원을 설립
-쌍초점타자기, 한영겸용 타자기,한글 텔레타이프, 한글 점자타자기,
한글 워드프로세서, 맹인용 한글 워드프로세서 등을 개발
- 정부가 4벌식 한글 타자기를 표준형으로 정하자 3벌식 타자기의 우수성을 일관되게 주장하며 정부와 싸움
-운명하시기 며칠전까지 하이텔 PLAZA에  3벌식 타자기의 우수성을 매일 알림
-1995. 3. 7 서울 운명





미국 망명중에 만난 60대 중반의 지인에서
젊은 사람이 컴퓨터도 안 배우고 뭐하는 거냐며
호통치셨다는 일화가 있다


40여년 전에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타자는 지금으로 말하면 PC로 생각할 수 있겠다.

"현대인은 첫째 타자를 칠 줄 알어야 하고,
둘째 운전도 할 줄 알어야 되며,
셋째 영어회화도 잘 해야 된다"

또한 돌아가시기 수개월 전에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기셨다고 한다

“나의 죽음을 세상에 알리지 말라.
장례식도 치르지 말라. 쓸만한 장기와 시신은 모두 병원에 기증하라.
죽어서 한 평 땅을 차지하느니 그 자리에 콩을 심는 게 낫다.
유산은 맹인 복지를 위해 써라”

또한 젊음라는 것은 나이가 아니라
얼마나 자신의 목적을 추구하며 열정적으로 살아가느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공병우 박사님은 운명하시기 며칠 전까지
PC통신 하이텔에  세벌식의 우수성을 알리는 글을 올리셨으니
진정 자신이 믿는 것을 끊임없이 추구하던 젊은이라 생각된다.

[참고] 공병우 박사 10주기 '세벌식' 불씨 살린다